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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대학 서법연구소 한·중 서예교수 토론회
mseoyeadb 2005/10/11, 조회수 : 5591
북경대학 서법연구소 한·중 서예교수 토론회 ‘書藝’를 말하다. 김 병 기(서예가, 서예평론가, 전북대 교수) 정리 지난 8월 20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200번지에 자리한 중국문화원 2층 전시실에서는 의미 있는 서예전이 개막되었고 이어서 같은 건물의 지하 강당에서 한국과 중국의 서예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예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가늠하는 자유 토론회를 가졌다. 많은 청중들이 참석한 가운데 4시간 동안 벌어진 토론회에서는 실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름 하여 「북경대학 서법연구소(석사과정) 한·중 서예교수 작품전 및 세미나」가 열린 것이다. 이번의 전시회와 세미나는 2004년 12월에 한국의 중진 서예가 네 분이 북경대학 서법연구소의 자체 심의를 거쳐 객원교수로 초빙을 받으면서부터 태동하였다. 한국의 서단에서 실기와 이론을 겸한 무게 있는 중진 서예가로 평가 받고 있는 초정 권창륜, 근원 김양동, 학정 이돈흥, 심석 김병기 선생이 북경대학 객원교수로 초빙을 받게 된 것이다. 이들 초빙 교수 중에서 초정 권창륜과 심석 김병기 선생은 2005년 상반기에 이미 북경대학 서법연구소에서 100여명의 석사반 연구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 바 있다. 한국의 중진 서예가·서예학자와 북경대학사이에 이루어진 이러한 활발한 교류과정에서 합동작품전과 세미나에 관한 의견이 제기되어 이번에 한국에서 첫 번째 전시회와 세미나를 갖게 되었고, 2006년에는 북경대학에서 또 한 차례 전시회와 세미나를 개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월간서예》는 이들 북경대학 서예 교수들의 작품전에 대해서는 이미 상세하게 보도한 바 있다(2005년 9월호). 이번 호부터는 세미나 당일 녹취한 토론 내용을 김병기 교수의 도움을 받아 정리하여 연속으로 수회에 걸쳐 연재하기로 하였다. 시종 진지하고 열 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참신한 토론회였던 만큼 우리 한국의 서예계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는 내용이리라고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들의 애독을 바라는 바이다. 토론에 참여한 교수는 중국의 劉正成, 王岳川, 徐寒 교수와 한국의 권창륜, 김양동, 이돈흥, 김병기교수 등이며 사회는 김병기 교수가 맡았다.                               - 편집실 김병기 : 이번의 북경대학 한·중 서예교수작품전 개막식에 참석해 주시고 또 이 토론회에까지 동참해주신 여러 선생님들과 서예가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토론회는 특별한 형식을 갖추지 않고 자유롭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의 학회나 학술대회와는 달리 지정토론자를 따로 두지 않고 앞에 나와 앉아 있는 우리 교수들 상호간에 토론을 하는 것을 기본 틀로 하면서 가능한 한 객석의 질문과 의견을 많이 받도록 하겠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우선 한국의 권창륜 교수와 김양동 교수, 중국의 유정성 교수와 왕악천 교수께서 매우 간단하게 약 5분씩 평소 서예에 대해서 가지고 계셨던 생각을 발표해 주시고 발표가 끝나면 발표한 내용을 매개로 삼아  단상의 발표자와 객석의 청중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도록 하겠습니다. 발표 순서는 권창륜 교수, 유정성 교수, 김양동 교수, 왕악천 교수 순으로 하겠습니다. 먼저 초정 권창륜 교수님 발표해주시지요. 권창륜 : 자유토론장까지 이렇게 많이 동참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는 정식 논문발표회는 아니고 난상토론을 유도하는 형식을 갖춘 자리인 것 같습니다. 특히 북경대학서법연구소가 개설된 후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갖는 서예토론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전 서예전 개막식 인사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북경대학에 석사과정으로서 서예 연구소가 설립되었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습니다. 북경대학서법연구소의 개설은 서예발전과 서예문화 창달, 그리고 서예의 인문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큰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수 십 년 동안 서예를 해오면서 평소에 느꼈던 점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특히 서예 교육과 현대서예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저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해왔습니다. 현대 서예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일본이 제일 선두에서 묵상이니 묵희니 하는 이름아래 일종의 추상적인 개념을 갖고 시도한 것이고 지금도 끊임없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우리나라도 약 40여 년 전에 원곡 김기승 선생께서 墨影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현대성을 추구한 바가 있고 정환섭 선생 역시 그러한 시도를 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 이후에 우리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 그리고 최근의 한중문화교류사로부터 가늠해 볼 때 杭州지역을 중심으로 한 學院派의 활동과 그 이후에 최근에 와서 북경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이른 바 ‘유행서풍’ 조류 등에서도 현대서예를 표출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북경대학서법예술연구소 및 한국 내 여러 대학의 서예과에서 담당해야 할 앞으로의 서예 교육문제는 어떠한 것이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저는 한국에서 직접 교단에 서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매우 많이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해보곤 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서예의 원전 자료에 대한 천착이 아주 부족했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조선 왕조의 전통적 기세가 몰락하고 또 외세의 점령으로 인하여 야기된 우리 것에 대한 인멸이나 모독으로부터 영향 받은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교육정책에 한문교육이 빠져있기 때문에 더욱 원전에 대한 연구 부족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국내 대학에 서예과가 설치가 되고 또 외국유학을 한 교수가 많이 등장함에 따라 이론적인 원전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그렇다면 우리가 서예교육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야 되는가 또 현대서예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가’하는 문제들이 과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우선, 근본적으로 볼 때 서예를 어떤 조형적 미로 분석한다든가 규정한다든가 연구하기 전에 더 중요하게 고려하고 함께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는 ‘서예가 과연 心學이냐 經學이냐’ 그리고 ‘서예가 형태냐 정신이냐’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심각하게 느끼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모든 학자들은 形과 意, 心 가운데 하나라도 결여되면 서예로서 의미가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동안 옛 이론을 보면 ‘글씨라는 것은 오직 神彩 -정신의 빛깔만 보는 것이지 자형은 보지 않는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예의 외형보다는 내면의 정신성을 더 많이 강조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자형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서예의 아름다움이 결여되기 때문에 형식과 정신 이 양자를 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형태를 지키려면 그만큼 우리가 임모를 많이 해야 하는데 현재는 임모를 많이 하지 않는 경향을 띠는 것 같습니다. 임모를 많이 하지 않으면  붓을 구사하는 방법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서예공부의 도구 방면에 개선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가 실질적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서예사를 통하여 원나라 때의 명필인 조맹부가 하루에 一萬 자를 썼다든지, 명나라 때의 문징명이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천자문을 한번 쓰고서야 내려와서 손님을 맞았다든지, 왕안석이 글씨 쓰느라 바빠서 쉴 틈이 없다고 했다든지 하는 등의 노력이 있었음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그러한 투철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중국의 노신선생도 말하기를 “모든 예술은 뿌리가 없는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현재도 ‘溫故而知新’하는 방법은 유용하며 ‘溫故而知新’이 유용하기로는 서예뿐 아니라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깊고 두터운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중국에서는 그러한 노력을 勤(부지런함), 恒(항상 변함없는 마음), 專(오로지 한 곳에 집중함) 세 글자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부지런할 근(勤)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하는 것이고 항상 항(恒)자는 그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며 오로지 전(專)은 서예를 택했다면 자신이 택한 학문에 전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글자는 백일 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무수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현대의 대학교육이나 사설 서예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노력을 하지 않고서 어떻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늘 이야기 하는데 제 좁은 소견으로 볼 때 한국 서예는 70년대 초반부터 법첩 임서를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가 지지부진했던 것은 서예이론 즉 서론에 대한 천착이 없었던 것이 큰 이유 중의 하나이고 서예지도자들의 지도방식이 그릇된 것이 또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탓에 성과가 적었습니다. 그동안 특히 서예에서 자칭 앞서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서구의 미학, 일본의 미학을 우리 것인 양 대입해서 서예를 논하는 경향이 다분히 있었는데 이러한 사고는 굉장히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앞으로 미래의 서예를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할지의 문제는 기초이론을 어떻게 닦으며 또 어떠한 지도아래 어떠한 노력을 경주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예지도자가 길을 오도하면 따라오는 학생은 당연히 바른 길을 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우연히 어떤 문화인사와 식사를 하는 중에 “고전이 곧 현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고전을 모르고서는 현대를 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제 의견을 정리하자면, 기초이론을 탄탄히 마련하고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또 다른 학문과 겸하는 것이 진정한 서예를 하는 길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서예를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위에 각 민족의 독특한 심미의식을 더하면 한국적인 서예가 되고 중국적인 서에가 되며 나아가 세계적인 서예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김병기 : 다음으로 유정성 선생님 좋은 말씀 해 주시지요. 유정성 : 방금 초정선생님의 말씀은 아주 훌륭합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그분이 말한 고전이 곧 현대라는 관점에 동의합니다. 중국의 沈尹默선생의 말에 따르면 ‘예술은 고전과 현대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오직 좋은 것과 나쁜 것만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에 서예가들이 참고로 하고 있는 것은 옛날 서예가들의 작품들입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쓰고 있는 서예들은 고전의 아주 전형적이고 뛰어난 서법들인 것입니다. 저는 그 동안 여러 차례 한국에 왔습니다. 제가 한국에 자주 오는 이유는 한국의 當代 서예는 우리가 마땅히 배워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국으로부터 본받고 싶은 점이 두 가지 있는데 그 하나는 한국의 경제 발전이고 또 하나는 한국의 서예 발전입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중국이 배워야할 모델입니다. 한국의 서예 발전과정 역시 중국이 배워야할 부분이 많습니다. 한국의 서예로부터 배울 점 역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 한국의 대표적인 서예가 선생님들께서 노력하고 있는 방향들, 또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측면들이 어떠한 것들인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그 분들의 정신세계를 잘 들여다보면 중국이 많이 상실한 부분을 한국의 서예가들이 保持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점을 배우고자 합니다. 게다가 한국의 서예를 공부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게 중국에 유학하고 있는데 그들의 학구열은 정말 감탄할 정도 입니다. 두 번째로 한국의 서예발전에는 모종의 순서와 질서가 있는 데 우리는 그것을 배우고자 합니다. 한국서예의 유파의 발전은 아주 건강하고 배울만한 내용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서예가들이 만들어 놓은 학습태도와 교학 방법은 중국서법에 있어서 일종의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전주에서 2년마다 개최하고 있는 서예비엔날레와 서울에서 개최하고 있는 서예비엔날레는 국제적인 서예 행사입니다. 특히 전북서예비엔날레(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학술적인 성격이 아주 강합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서예행사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창조성 있고, 가장 학술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규모 또한 가장 큰 행사가 바로 전북서예비엔날레입니다. 전북서예비엔날레와 같은 수준의 서예전시회는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한국의 서법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중국서법의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중국서법은 개혁개방이후 20년 동안 아주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너무나 많은 부족한 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 서예를 배워야 합니다. 이 부족한 점을 두 가지 방면에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중국 當代(현재)서예의 미술화(美術化) 경향입니다. 방금 초정선생님께서 한국 서예가 서방미술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중국고대에서 서예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상위층의 지식문인들의 예술 활동이었습니다. 그것이 최근 민중의 예술로 전이가 되면서 그 안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문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 서예에 내포되어야 할 문화의 의미, 정신의 의미입니다. 내면의 정신보다는 글자의 외적 조형을 강조하는 것이 중국 當代서예의 가장 큰 특징이면서 약점입니다. 조선시대의 추사선생님은 중국의 옹방강선생과 긴밀한 교류가 있었습니다. 그 추사선생이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가장 큰 영향은 옹방강이 서예에 대해서 견지하고 있었던 정신적인 측면이지 외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추사 당시의 중국서예가와 한국서예가의 공통점을 보면 이들은 모두 당시를 공부하고 송사를 읽으며 서예의 외형보다는 서예에 담을 내면의 인문정신 함양에 주력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일반적인 서예가들은 문화라는 것이 서예에 미치는 전반적인 영향에 대해 잘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합니다. 때문에 중국의 서예가들이 자신의 개성을 추구한다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개성이 없이 하나로 모아져서 또 하나의 획일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 획일화가 바로 이른 바 ‘현대성의 추구’라는 것입니다. 서예의 현대화, 혹은 현대 서예라는 이름아래 각기 개성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제작된 작품을 보면 개성이 드러나기 보다는 오히려 ‘현대적 경향’이라는 획일성을 보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개성을 중시한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아주 비슷한 경향을 보입니다. 개성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개성을 잃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중국서예의 문제점은 상업성을 지나치게 추구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서 서예는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역할보다는 돈을 벌기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이러한 시장성이 중국서예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부 나이 많은 유명 작가들을 보면 그의 작품이 일단 시장에 들어가고 나면 그가 처음 작품을 할 때의 면모를 상실해 버리고 맙니다. 자신의 작품성이나 예술적 이상보다는 시장의 수요에 맞는 작품을 양산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서예는 아주 많은 부분, 예술성보다는 시장성에 의해 제작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상황으로 미루어 보자면 값이 가장 높은 작품이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시장이 사람들로 하여금 작품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능력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조류가 젊은 서예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쳐서 어떻게 하면 시장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하는 것이 서예가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장의 논리는 비단 중국의 서예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중국의 문학, 회화 등 여러 방면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상업성의 조류가 중국 당대 여러 방면의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류 때문에 우리 중국의 서예가들은 그들이 어떤 창작 욕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팔기위해서 작품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1월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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