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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작가-여촌 이상태의 문인화 이야기
mseoyeadb 2006/07/11, 조회수 : 5599
簡潔의 極致에서 일어나는 文氣 (여촌 이상태의 문인화 이야기) 정 충 락( 서예평론가 ) 1. 서언에 문인화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의 확산으로 인하여 그 정도를 짐작하기 어려울만큼 외형적인 발전을 이루어 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문인화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의 다양한 수용으로 인하여 고전에 익숙해 있는 입장의 작가들은 다소 의아해 하는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전래의 문인화가 지니고 있는 선비들의 정신과 형상의 합일에서 읽어내야 하는 맛과 지금의 문인화가들이 펼치는 형상적인 퍼레이드의 맛이 표면적으로는 약간의 다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가장 문인화 다운 문인화인가. 당연히 畵中有詩를 상기할 수 있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화중유시’라고 하는 말은 북송의 大文豪인 소동파가 唐代의 문인화가인 王維의 작품을 보고 한 말이라고 하는데, 필자도 중국에서 다방면으로 조사를 해 봤지만 왕유가 그렸다는 실제의 작품을 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기록에는 앞서 말한 四字成語가 전해지고 있으니 거부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문인화의 核은 역시 寫意에서 찾아지는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주종을 이루고 있는 사의도 결국은 형상을 통해서 하는 말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간결하게 대상의 진솔한 맛을 우러내는 형상의 구성에서 우리는 선비의 정신을 읽어내야 하며, 또한 작가의 심오한 예술성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난 육월 말경에서 칠월 초에 걸쳐 ‘상화랑’에서 펼친 여촌(如邨) 이상태(李湘?)의 문인화전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생각을 문인화에 대한 이해도의 확산에 적절한 접목이었다고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략의 미적인 구성, 붓 한 필에 사물의 핵심을 그려내는 작가의 심오한 사고력의 조형성 제시, 이러한 것이 여촌 화백이 보여주고 있는 작품의 근원적인 핵심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쉬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가 제시하고 있는 생략의 핵, 다시 말해서 간결의 극치를 통해서 일어나는 문기의 실상을 만나보기로 한다. 2. 조형의 간결화 너절한 표현을 탈피하고 붓 한 번에 사물의 형상을 나타낸다. 그야말로 간결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 簡潔의 極致에서 일어나는 文氣를 관자들은 읽어내야 한다. 작가는 이렇게 묘사하는 방법을 통해서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조형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 하여 결코 낯선 형태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구습인 듯하면서도 구습에 얽매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철저한 구습을 이어받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작가는 그 가운데에서 현대성을 추구하고 있다. 현대성을 추구하면서도 구습에 익숙한 형상이 사람들의 시선을 비끌어맨다. 여촌 화백의 시각에 비쳐드는 사물의 형태는 그야말로 외형 우선이 아니고 본질 우선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그 사물이 지니고 있는 본질의 형상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투영되는 寫意의 기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적인 선정의 방법은 선인들이 즐겨 사용했던 기법의 선택과 결코 다르지 않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가 살펴야 하는 부분이 노정된다. 그것은 선인들의 기법을 즐겨 사용하면서도 현대적인 조형의 근간을 흐트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고전에 典據한 현대의 표현방법도 동시에 알게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지금시대에 걸맞는 문인화의 표현방법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일반적으로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하여 외형적인 형상을 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외적인 형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면 구차한 설명이 필요하게 되는데, 여촌 화백이 구사하는 표현의 기법은 형상에 대한 표현을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단 한 번의 운묵에 의하여 對象의 본질을 소개한다. 누구든 그러한 형상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대상의 본질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조형화 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여촌 화백이 사물을 관조하고 그 사물의 본질을 화폭에 옮기는 방법으로 이미 자리하여 개성화 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文氣의 적절한 우림이요, 그 적절한 문기의 우림에 의하여 작가의 조형사상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 부분이 바로 여촌 화백의 작가적인 개성을 살펴내야 하는 부분이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생략법에 대한 연구를 부단히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간결화 하기 위해서, 그 가운데에서 대상의 본질을 나타내고자 부단히 연구한 결과가 형상화 되어 이번 전시에 총체적으로 열거되고 있다. 이것은 실로 현대문인화의 쾌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번의 경우 지금까지 전래되어 온 媒材의 사용에 대한 자연스러운 변법도 읽어내야 한다. 그것은 화선지나 한지 중심에서 캔버스의 동원으로 방법을 바꾼 것을 말한다. 캔버스의 동원은 여촌 화백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캔버스 위에 장지를 덧바르고 그 위에 수정말을 동원한다. 그리고는 먹과 채색으로 그림을 그려댄다. 이러한 재료의 상관관계에서 일어나는 형상의 간결함도 외면할 수 없는 기법의 새로운 동원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 방법은 여촌 화백이 아마도 처음 사용한 방법일 것이다. 대개의 경우 형상의 異象을 두고 偶然이라고 하는데, 작가에게서 우연은 없다. 설사 우연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는 형상이 등장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필연에 의한 우연의 등장일 뿐, 결코 우연을 위한 우연의 등장은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계획된 대상의 선정과 그 대상의 표현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작가의 思考에 의해 동원된 재료가 우연을 낳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고쳐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필연에 의한 우연의 등장, 그 우연을 위한 작업은 결코 아니지만, 이번 전시에서 여촌 화백이 기획한 매재의 선택방법은 표현상의 우연을 위한 매재의 동원은 아니었다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재료에 의한 형상의 드러남이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사물의 본질 접근에 다소 미흡한 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유추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간결화 된 붓질에서 일어나는 사물의 분명한 본질의 등장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가 있다는 것은 큰 수확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3. 다양한 레퍼토리 여촌 화백의 그림소재는 다양하다. 최근에는 다소 그 양상이 달라지고 있지만 대개의 경우 문인화를 하는 경우 매란국죽의 사군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여촌 화백의 경우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사군자가 지니고 있는 본질의 형상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다. 그것은 그가 일괄적으로 그림의 題를 尋思圖로 정한 것에서 찾아진다. 생각을 찾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필자는 그 의미를 풀어봤는데, 혹시 다른 뜻이 있다면 지적을 해 주기 바란다. 여기서 말하는 생각을 찾는다는 것은 실로 문인화의 本質訪問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든지 간에 관자의 享受心을 흔들어야 한다. 그림은 보고 싶고 갖고 싶은 작품이어야 한다.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작가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관전자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며 또한 다양한 형상의 동원을 꾀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어떤 형상의 그림이든 여촌 화백의 붓끝을 거치게 되면 누구든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많은 생각을 하도록 유도 하는 것이 尋思圖가 지니고 있는 본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작가가 향수자를 위하여 전개하는 표현에 대한 안내는 일찍이 없었다. 일반적으로는 당연히 간단하게 처리하여 표현된 형상을 두고 그림을 쉽게 그렸다는 생각을 먼저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간략화 된 그림을 그리려면 외형의 구체적인 설명이 붙은 그림에 비하여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심사도’라는 제목에서 알 수가 있듯이 간결한 표현으로 향수자의 시선을 비끌어 매기 위한 작가의 고민이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는 한 작품을 두고 작가와 향수자의 공동고민을 유도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문인화를 두고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면 그 문인화의 본질적인 가치는 하향한다. 때문에 언제나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하는 그림이어야 하는 것이 문인화이다. 그래서 앞서 말한 북송의 소동파가 문인화의 본질을 왕유의 그림을 통해서 代辯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매화가 만발한 곳을 사람이 걸어가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는 ‘심사도 1, 2’를 우선하여 새가 나는 듯한 난초가 있는가 하면, 상모를 돌리고 있는 듯한 蘭도 있다. 당연히 술에 취한 듯한 형상의 그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심사도 29’에서 살필 수 있듯이 분청대접에 필 듯 말듯한 연꽃의 등장도 그러하려니와 ‘심사도 30, 31, 32’에서 읽을 수 있는 회화성을 생각하게 하는 한떨기 연꽃 시리즈도 黑白相間의 조형성에 대한 현대적인 문인화의 접근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그림에서는 서로 대비를 취하면서도 하나로 어우러지는 형상의 조화를 생각하게 한다. 이 그림들은 당연히 앞서 설명한 재료에 대한 안내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먼저 캔버스 위에 장지를 바르고 그 위에 수정말을 塗抹한 후에 그리고자 하는 사물의 형상을 음양의 중간에서 존재하도록 한다. 뿐만이 아니라 낙관을 작품의 위쪽에 처리함으로써 향수자의 視覺移動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음인데, 그 부분에서도 조형의 이동이 수평으로 발생하게 한다. 어떤 의미를 설명하는 것인지는 그 의도를 짐작하기가 어렵지만 공간에 대한 구도의 변이를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번 작품에 등장한 형상에 대해서는 별도의 화제가 없어도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사물에 대한 사고의 이동성을 강하게 느낄 수가 있다. 구상과 비구상의 混合驅使(심사도 34, 40, 41, 42, 52 등)도 같은 생각의 음양조화를 적절하게 구사한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구상이 따로 있고 비구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조형으로서 상존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었을 때에는 어떤 형상이든 망설이지 않고 同時登場시킨다. 이를 통해 살피건대 사물에 대한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판단된다.   그리고 이렇게 간결한 조형을 이루게 된 바탕은 심사도 45 이후에는 상당부분에 걸쳐서 赤裸裸하게 소개되고 있다. 특히 심사도 61에서 만날 수 있는 ‘成都의 杜甫를 찾아서’에서 볼 수 있듯이 茅屋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죽림과 그 앞에 바위가 두보를 상징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지금시대를 살아가는 문인화가들의 표현방법이라고 설명한다면 객관성이 분명하지 않을까 싶다. 4. 마치며 누구든 작품은 남으로부터 사랑받는 작품이어야 한다. 여촌 화백의 다양한 레퍼토리에 의하여 탄생한 생략기법의 원천은 그가 부단히 연구하고 있는 화법의 새로운 제시이기도 하겠지만, 그 가운데 여행을 하면서 실천하는 스케치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촌 화백이 그리는 그림은 이를 통해서 알 수가 있듯이 문인화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그렇다 하여 그가 문인화를 떠나서 일반회화를 지향하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산수화를 문인화로 표현하는 것에서 그의 붓끝이 닿은 그림은 이왕에 언급이 있었듯이 모두가 한결같이 文氣가 서려 있다. 이렇게 글과 무관한 그림에서 문기를 느끼게 된다는 것은 그 그림의 완성도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작품을 통한 그림의 본질 전달이 이처럼 的確하게 이루어 진 것이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기도 하다. 문인화에 있어서는 현대성을 추구하든 고전을 따르든 어느 것이든 상관이 없지만 작품 속에서 선비의 정신이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것을 여촌 화백은 확실하게 작품을 통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별스럽게 대형화한 섬진강의 봄빛(심사도 5)에서 뿌려지고 있는 매화향기의 형상, 이를 통해서 관자는 一筆揮之의 극치를 보고 있음이 아닌가. 같은 맥락에서 심사도 19의 다이나믹한 운필의 묘미를 두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면 역시 그림을 그리는 데에 있어서도 글씨와 마찬가지로 일회성을 강조하고 있음이다. 당연히 배경에 대한 打墨은 사물의 본질과는 무관한 배경이기에 부수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이지만, 그것이 주역인 금빛 댓잎을 수식하는 것이므로 따로의 설명이 필요없다. 그렇다하여 일회성을 위반한 것은 물론 아니다. 아무튼 생략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증거하고 그 생략의 기법을 통한 작품의 본질은 어떤 것인가를 확실하게 알게 하는 여촌 화백의 이미지 전달은 우리 문인화단에 적지 않은 분위기 쇄신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다음의 칠언절구로 여촌 화백의 작품에 대한 총평을 요약했다. 여촌! 그대는 이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음인가. 筆端形態萬人傳, 寫意中心胸裏連. 簡潔毫痕文氣燦, 如邨畵伯遂通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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