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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서예포럼을 열며
mseoyeadb 2007/02/02, 조회수 : 3882
한국서단은 국전시기를 지나 80년대 미술대전 시기로 진입하면서 국가경제의 번영과 시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다양한 충족욕구에 부응하면서 양적으로 팽창하게 되었고, 서예 사설 교육기관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되었다. 당시에는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본질적 연구를 추구하는 전문가 서예교육 기관과 조선시대부터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서당식교육을 받은 여항식 서예교육집단으로 잠시 나뉘어 교육을 담당하였다. 이들로부터 취미 또는 보다 심층적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은 다시 각기 직업으로 선택하거나 전환을 하면서 사회에 서예의 저변확대를 주도해 왔다. 이러한 상황은 다시 바로 사설교육경쟁으로 이어졌고, 교육의 질을 가늠한다는 공모전이 크게 부각되면서 일반인들은 등용의 문으로 여겨지는 공모전 경쟁으로 이어졌다. 급기야는 여항식 교육기관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공모전을 주도하는 계층과 소외되는 계층이 다시 갈등을 겪으면서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89년에는 기존의 한국미술협회에서의 독립을 요구하면서 한국서예협회로 작가가 나뉘어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고, 3년 뒤에는 통합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하여 한국서가협회가 창립하고 각 지방에 다시 지부를 결성하여 서예단체는 그 수가 급격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서예의 발전과 서단의 독립을 구실로 나뉘어 진 세 단체는 서예동호인들의 염원과는 달리 세 대결로 치닫거나 반목과 질시로 얼룩진 모습만 남겼다. 또 이러한 얼룩진 모습의 틈 속에서 모방하거나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새로이 공모전을 여는 단체는 기하급수적, 부지기수로 늘어나 名實不合하는 수상자만 양산하여 오늘 붓을 잡으면 내일 작가가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상은 곧 개인의 프라이드에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섣부른 서예인으로 활동하게 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분열은 곧 대정부에 대하여 각각의 목소리를 내면서 일치를 보지 못해 서예인의 이익이나 요구를 대변하지 못하고 폐해만 늘어났다. 골목마다 동사무소, 도서관, 문화센터에서는 거의 봉사수준으로 하면서 서단을 헤치고 있는데도 3단체는 한번도 어떠한 대책을 강구하거나 정책에 건의한 바가 없다. 혹자는 편승하여 모든 것을 수요자에게 맡겨야 된다는 수요자원칙주의를 내세울지 모르지만, 공공 기관에서의 교육은 일정한 자격이 있어야 된다. 이것은 기성세대의 과오이며, 그 폐해는 고스란히 후배들이 떠맡게 되었다. 현 서단을 주도하게 되는 70년대 80년대에 피나게 공부해 왔던 7080주역들은 이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하여야 한다. 월간서예포럼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른 서단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하여 각계의 의견을 다양하게 듣고자 한다.                                                                         - 월간서예포럼 주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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