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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작가_心石 金炳基 自述] 선비 서예가가 되고 싶다
mseoyeadb 2007/03/14, 조회수 : 6625
나는 서예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알리기 위해서 그 동안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해왔다. 중국 서예사와 한국 서예사를 공부하였고 갑골문으로부터 于右任을 비롯한 중국 근 현대의 여러 서예가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고구려 廣開土太王碑, 백제 武寧王 誌石, 신라의 冷水里碑 등으로부터 조선의 추사 김정희와 창암 이삼만, 한국 근 현대의 서예가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서예 유산도 적지 않게 살펴보았고 또 임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예의 예술적 가치와 특성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하여 중국미학에 관한 책들을 꾸준히 읽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는 어렴풋이나마 서예가 다른 예술과 다른 점 즉 서예의 예술적 특성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특성을 「思無邪의 淸淨性」과 「止乎禮儀의 節制性」과 「天人合一」의 자연성 등으로 정리한 적이 있다. 그런데 “思無邪”의 淸淨性, “止乎禮儀”의 節制性, “天人合一”의 自然性은 바로 중국의 유가들이 지향하던 생활의 방향이자 조선의 선비들이 지향한 삶의 방향이었고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였다. 따라서 나는 儒家의 사상과 조선 선비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차원 높은 서예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예는 손끝에서 나오는 예술이 아니라 함양된 인품이 자리한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예술이며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표출되는 예술이지 미술적 연마를 통하여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서예의 예술적 특성을 이렇게 파악한 나는 서예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서예가가 되기 전에 먼저 선비가 되어야 하고, 서양적 개념의 예술가가 아니라 한국 전통적 개념의 인문학자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한 후부터 나는 선비가 되고 학자가 되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였고 지금도 그런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선비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벽이 많음을 느끼고 가슴이 답답한 때도 많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 선비인데 항상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다보면 현실적인 벽에 부딪치곤 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나의 외증조께서 토로하신 〈走筆遣懷〉라는 시를 조용히 읊조려 보곤 한다.
世事而今可奈何, 세상사 이제 어이 할거나? 也宜沈醉也宜歌. 술에 취하고 노래 부르면 그만일까? 除天地外皆如此, 천지자연만 그대로 있는 외에 沈欲海中豈有他. 모두가 욕심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댈 뿐. 萬里風塵長荏苒, 온 세상을 뒤덮은 먼지는 오랫동안 걷힐 줄을 모르고 一方歲月易銷磨.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는 세월은 잘도 가는구나. 腥?滿眼無由洗, 서로 싸우느라 내 풍기는 비린내 누린내는 씻어낼 길이 없는데 狂想多時欲挽河. 나는 왜 헛된 줄 알면서도 세상의 흐름을 바꾸어 볼 생각을 하는가!
이런 나를 두고서 답답하다는 사람도 있고 오만하다는 사람도 있다. “네가 뭐기에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체하며 세상을 바꿔 볼 생각을 다 하느냐?”는 질책과 비아냥거림인 줄을 잘 안다. 나 자신이 새겨보아도 분명 오만한 태도다. 굴원(屈原)도 아니고, 도연명(陶淵明)도 아니며, 당연히 두보(杜甫)에도 못 미치고 소동파(蘇東坡)에게도 못 미치며, 면암(勉庵) 선생이나 매천(梅泉) 선생의 그림자 곁에도 가지 못할 위인이 헛되이 생각만은 그분들과 비슷하게 ‘우환의식(憂患意識)’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어 볼 생각을 하고 있으니 오만하다고 할 수 밖에. 그래서 더욱 답답하다. 그렇게 답답할 때면 나는 여묵(餘墨)도 좋고 퇴묵(退墨)도 좋다. 그저 붓을 들어서 ‘오유(傲遊)’ 혹은 ‘소유(嘯遊)’라는 큰 글씨를 휘둘러 쓰곤 한다. 그러나, 나는 선비가 되는 길을 쉬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옛 선비들의 삶을 반이라도 닮을 수 있다면 족하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그 길을 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생각이다. 50이 넘은 지금에야 ‘志於學’했다고 하더라도 15년 후면 ‘立’이라도 할 터이니 그 때면 내 나이가 60대 후반, 세상에 태어나 60대 후반에라도 제 스스로 꼭 서야할 자리에 제대로 꼿꼿하게 설 수만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장수를 해서 70대에 不惑하고 80대에 知天命할 수 있다면 그것은 두 말할 나위 없는 행복일 테고. 나는 선비가 되려는 꿈을 서예를 통하여 실현할 생각이다. 나를 다스리고 나를 닦는 수신(修身)도 서예로 하고, 나의 건강을 지키는 일도 서예로 하고, 나의 생각을 다듬는 일도 서예로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학문을 닦는 것도 인문학의 한 분야로서의 서예학과 아울러 가능한 한 문, 사, 철을 통합적으로 공부할 생각이다. 21세기를 맞은 지금, 세계는 차츰 20세기 예술의 ‘주목 끌기’를 중심으로 한 왜곡과 혼란으로부터 벗어나 서서히 절제와 청정과 해탈과 자연을 지향하고 있다. 조금씩 서예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장차 불씨로 피어나는 이러한 분위기를 최대한으로 살리려는 노력을 하고자 한다. 바로 선비 서예를 통하여 이러한 불씨 위에 기름을 뿌리고 섶나무를 대는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수시로 글씨를 쓴다. 식사 후, 잠시 쉬는 시간에도 놀이삼아 글씨를 써보고, 잠이 들지 않는 밤이면 아예 일어나서 밤새도록 쓰기도 한다. 좋은 시를 만나면 시의 감흥이 가시기 전에 써보고, 가슴이 답답할 때면 답답함을 풀기위해서 쓰기도 하며, 늦둥이 막내 딸아이가 놀자고 하면 큰 종이를 펴 놓고 함께 얘기하고 놀면서 낙서 같은 글씨를 쓰기도 한다. 그러다가 더러는 붓을 내려놓고 글씨를 쓰던 그 종이 위에서 공기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문득 흥이 나면 정색을 하고 시를 흥얼거리며 붓을 휘둘러 한 작품씩 뽑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쓴 것들 대부분이 결국은 ‘연습’한 종이가 되어 버려지고 말지만 어쩌다 재수가 좋은 날은 한꺼번에 서너 점 혹은 네댓 점씩 맘에 드는 작품이 쏟아지기도 한다.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글씨를 쓰고 글씨를 통해 삶을 즐기면서 인문학을 공부함으로써 선비 서예가가 되고 싶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람들이 나를 정말 ‘선비 서예가’라고 불러 주는 말을 맞게 된다면 나는 더 없이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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