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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정 이돈흥 선생의 글씨가 지니는 맵씨
mseoyeadb 2005/05/12, 조회수 : 6883
농산관전평- 거침없이 써 내린 調和로운 書寫 (학정 이돈흥 선생의 글씨가 지니는 맵씨) 정  충  락 (서예평론가) 1. 서언에 예부터 문사들은 글씨쓰기에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舊時代에는 당연히 서예가라고 하는 명칭이 없었으니, 그래서 다만 善書하다 로 당사자의 글씨솜씨에 대한 평을 하곤 했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글씨만 잘 써도 자신의 인생살이를 멋지게 전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보조를 같이하기 위하여 사회적인 서사교육의 투자는 그야말로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나고 있으며, 급기야는 그것이 사업으로 변하기에 이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글씨의 본질은 제쳐두고 형태만 잘 쓰면 되는 기술을 가르치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우리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가 있다. 그러나 글씨가 예술이라는 것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도 있다. 그리고 글씨예술에 일생을 거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만나고 있는 것이다. 학정(鶴亭) 이돈흥(李敦興)선생의 글씨예술은 바로 그와같은 맥락에서 자신의 글씨에 대한 애정의 표현과 마음의 형상을 펼치는 흔적의 실상을 보여주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서를 위하여 40여년을 한결같이 매진해 온 것은 斯界가 인정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학정 선생의 글씨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는 意外로 어렵지가 않다. 참으로 글씨를 잘 쓰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글씨를 쓴다고 하는 범주에 대한 이해부득으로 인하여 스스로는 글씨를 그리고 있으면서 쓰고 있다고 하는 경우를 우리는 이 또한 수없이 만나고 있다. 이러한 서가(?)들은 학정 선생의 글씨를 통하여 자신의 글씨가 쓰는 것인지, 아니면 그리고 있는 것인지를 한 번 정도는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씨를 쓴다고 하는 것은 내용의 이해와 운필의 리듬이 하나로 묶여야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원형에 대한 형상적인 흉내를 내고자 하는 것을 들어서 그린다고 분류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와 같은 것은 기초과정에서 정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데 학정 선생의 서사는 자연스럽게 써내려나는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든 그 형태의 기본적인 연구에 대한 흔적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자연스레 휘두른 듯한 글씨의 흔적이 제대로 이루어지기까지에는 학정 선생이 지니고 있는 나름의 조형의식에 따라서 구체적으로 구성하는 배경이 그 뒤에 엄연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한필 한필 서사되는 필획의 위치와 상호연계에 대한 것을 설명하는 것인데, 바로 揮灑의 前段階에서 이미 형상적인 핵심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학정 선생의 서예를 간단하게나마 종합적인 그 대강을 살펴보기로 한다. 2. 서체의 자유분방 대개의 경우 서가들은 자신의 主武器가 있다. 이는 연서기간에서 보여주는 서체의 다양함이 아니라, 일생을 걸게되는 글씨체에 대한 자신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선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누구를 불문하고 있을 수 있는 일상적인 예이다. 예컨대 왕희지는 행초서에 있어서 異論이 없는 書聖이며, 구양순은 해서의 鬼才이고, 안진경은 逸脫書의 白眉이며, 秋史는 海東의 명필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세상에는 대개 총체적인 서사의 기능을 요구하는 것이 常例처럼 되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학정 선생의 경우는 종합적인 書寫의 達人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序言에서 밝혔듯이 학정 선생의 글씨는 보기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조형적인 구도를 지니고 있는데, 그 부분을 淸朝의 鄭板橋(名=燮)가 언급하는 胸中成竹이라는 것으로 대신 설명을 할 수가 있는 부분이다. 어떤 형상의 서체든 글씨가 지니고 있는 형상적인 의미와 자신이 제시할 수 있는 실상의 조형성을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조율하고 있다는 것이 학정 선생의 글씨맵시라고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금세기 초에 우리나라 10대 서예가 중에 한 작가로 학정 선생을 선택했다. 주변에서 그에 대한 異見이 어쩌다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그 선정기준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때 학정 선생을 선택한 이유의 글 제목은 “유연한 흐름의 조율사”였다. 그리고는 주로 그의 행서세계에 국한시킨 견해를 밝힌바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필흔의 유연성과 리듬감을 강조한 기억이 있다. 이러한 유연성과 리듬감을 살려내기 위한 그의 노력에 대하여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인가. 더러는 조형위주에 치우치고 있다는 우려도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조형성제시를 위한 본인의 소견을 분명하게 한 것이지 글씨에 대한 양식화된 형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가 있는 부분이다. 누구든 글씨는 형상을 통하지 않고서는 보여줄 수가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러한 異見提示는 조심할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제시하는 조형성의 객관적인 이해를 얻기 위한 학정 선생의 노력은 일반적으로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글을 알고 글씨를 쓴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 붓끝에서 이루어지는 형상 속에 자신의 혼을 담아내고자 하는 뜨거운 애정이 없고서는 불가한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그가 서사하는 서체가 어떤 특정한 글씨꼴에 멈추고 있다 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가 거기에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앞의 설명처럼 유연한 흐름의 조율사 답게 그가 구사하는 모든 글씨는 별스럽게도 막힘이 없다. 서체와 무관하게 마음이 하나로 묶여진 기운에 의하여 서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글씨가 되었건 간에 그가 서사하는 글씨는 그야말로 자유분방하게 스스럼없이 써내려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파악할 수가 있다. 이러한 것을 두고 글씨는 쓰는 것이다 라고 한다. 이를 이루기까지는 당연히 지난 40여년 간의 세월이 있었다. 이 기간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무슨 일이든지 해 낼 수 있는 기간이지만, 글씨예술만은 그렇지가 않다. 당연히 세월만이 書品을 높여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글씨를 제대로 알고 조형이 무엇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만, 그리고 그것을 증거할 수 있는 서사능력이 뒤를 받쳐주어야만 남이 인정하는 글씨가 된다. 이 부분의 판단에 있어서 서예계가 보여주는 일반적인 평가는 지극히 냉정하다. 세월만 보내는 것으로는 좋은 글씨를 쓸 수가 없다는 것은 설명이 필요없다. 글씨는 바로 그 사람과 같이 익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書譜에서 孫過庭이 말한 人書俱老가 바로 그것인데, 학정 선생의 경우야 말로 바로 이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답을 내릴 수가 있다. 사람은 글씨와 함께 익어간다. 참으로 새겨둘만한 명언이다.          3. 개성넘치는 형상 어디서 만나든지 저 글씨는 누구의 글씨라고 알아볼 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글씨를 쓴 작가의 개성이다. 그래서 남의 글씨를 베껴쓰기만 한다면 정작 글씨를 쓰는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쓰고 있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게 된다. 제아무리 王羲之를 잘 베껴쓴 글씨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베껴쓴 자리에 왕희지의 흔적은 있을지 몰라도 베껴쓴 작가의 모습은 없다는 말이다. 이 부분을 우리는 잘 이해를 해야 하는데, 換骨奪胎라는 말은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인가. 그것은 어려운 것을 쉽게 생각하고 便乘에만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학정 선생의 경우는 스스로의 생각에 의한 스스로의 글씨를 구사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가 있다. 그에게 있어서 서사에 관하는 한 어떤 내용이든 불문한다. 어떤 서체라도 불문한다. 써야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 형상은 학정 선생의 고유한 心象으로 등장하여 이해가 되도록 서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붓끝은 언제나 신나는 붓춤판을 벌인다. 그리고 붓끝이 스스로 놀랄 정도로 운필에 있어서는 막힘없이 전개해 나가다가 드디어는 그 자리에 자신의 분명한 모습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역경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학정 선생은 그 역경들을 모두 감싸안아서 자신이 펼치는 서예문화로 활용할 수 있도록 무형의 자원으로 환원시킨 것이다. 그것은 국내외에서 그를 알고 있는 知己들이라면 대개가 증거하고 있는 부분이다. 학정 선생의 글씨를 잘 살펴보면 어떤 서체가 되었든간에 망설이고 있다는 부분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서체를 불문하고 형상은 마음에 따라서 얼마든지 조율이 된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증거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학정 선생이 글씨를 쓴다고 하는 실천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증거된다. 뿐만이 아니다. 그는 운필에 따른 운묵의 흐름까지도 일관되게 살필 수 있게 하고 있으며, 아울러서 서사마저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앞 부분에서 그 대강이 설명되었지만, 학정 선생의 서사는 언제나 금방 써낸 것처럼 느껴지도록 한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그것이 氣韻이다. 이러한 기운추구는 생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기운의 움직임은 지도선생의 체본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부단히 연마한 작가의 정신세계가 이루어내는 조형성에서 쓰여지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그의 행서에서는 大小長短太細潤渴의 종합적인 퍼레이드를 보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어느 하나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철저한 조형적인 事前의 計算이 작품 속에 깊숙히 틀어박혀있지만 대개는 그대로 보아넘긴다. 그렇게 구사되는 그의 작품은 글자의 위치가 다소 흔들린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그것은 기운이 전체의 글씨꼴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운의 묶음이 글씨를 쓰는데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인가도 이해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개는 그냥 간과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내용에 대한 충분한 熟知는 말할 것도 없고, 형상의 상호연계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주의를 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서사를 통해 느껴지기로는 더러 酒氣의 작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觀世音과 같은 작품에서 그러한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인데, 이는 형상을 통한 자유가 넘쳐나도록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어떤 작품도 소홀한 것이 없다는 점인데, 이는 무엇보다 작품에 임하는 정갈한 그의 심상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성을 기울이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으로서 이해를 하게하는 조형성의 변이상황에 대한 연출력이 학정 선생에게는 남보다 별스럽게 많다는 것이다. 4. 마치며 인간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서 글씨라도 멋들어지게 잘 써보았으면 한이 없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은 서예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학정 선생의 글씨예술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어렵지 않게 쉬엄쉬엄 넘어가고 있다는 부분을 살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그 작품을 통해서 누구든 자신의 서예공부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서예전시를 한다해서 누구나 본받을 만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당연히 모든 서예가가 한 마음으로 이해를 하고 수긍을 하는 그러한 글씨꼴, 그 글씨꼴을 통해서 작가의 인간적인 내면의 세계까지 볼 수만 있다면 더더욱 멋진 것이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생애에 처음으로 하는 전시행사를 통해서, 그가 지금까지 지향해온 심상의 형상을 한 자리에서 살펴보면 서예를 하는 입장에서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훌륭한 전시에 蛇足이 될는지도 모르지만, 이왕에 펼치는 잔치자리에 글씨를 쓰는 작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라는 스스로의 글도 있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무릇 서예가들은 그 능력을 서사에 국한시키고 마는 경우를 우리는 非一非再하게 보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글씨를 잘 쓰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무엇을 쓰는 것인가는 그 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모처럼 만나기 어려운 전시에 대한 소견이 자칫 흉이 된다면 미리 양해를 구해 놓는다. 필자의 話頭는 한결같이 변함이 없다. “글씨 잘 쓰고 못쓰는 것은 팔자소관”이라고. 그러나 무엇을 쓰는 것인가는 팔자소관이 아니라 작가의 철학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무등산 정기가 어제 오늘 언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빛의 고을인 光州에서 鶴亭 선생이 펼치는 한마당 글씨잔치가 더욱 빛을 내려면 그러한 구색을 맞추게 되면 錦上添花라 생각되어 의견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서단이 안고있는 최대의 약점이자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점의 핵심부분이다. 이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의 다름이 있지만, 서예를 하는 입장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써내야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苦言에 대한 이해도 함께 구해놓는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입장을 우회하여 안내하고 있다. 莊子의 大疑說에 나오는 문구를 서사한 것이다. “五十九非也”라는 것이 그것인데 이러한 명언을 들고 나오는 학정 선생의 다음 전시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작품들은 어떤 것인지 당연히 궁금해 진다. 그리고 이번의 전시에 대한 견해는 현장에서 살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다음의 칠언절구로 요약을 해 보았으니 唯願一笑하길 바란다. 古今不問筆端驚, 多樣心痕思考聲. 形象追求同意味, 鶴亭書寫四通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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